[뭐든지 보고,書]_감자 먹는 사람들


감자 먹는 사람들_고흐(Vincent Van Gogh, 1885)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본다. 이 작품을 발표한 1885년 즈음의 고흐는 당시의 화가 밀레처럼 노동자와 농부의 노동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려고 마음먹은 때였다. 노동이 삶에 전하는 가치를 그림을 통해 남기려 했던 것이다. 수많은 소묘를 그리며 준비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음에도 작품 발표 당시 평단의 반응은 형편없었고, 그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흐 스스로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되리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고뇌를 담았다.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작은 등불 아래서 접시에 담긴 감자를 손으로 먹는 이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그들이 마치 땅을 파는 사람들처럼 보이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애썼단다. 이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건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정직하게 번 것임을 말하고 싶었지”

그리 밝지 않은 램프 아래에서 다섯 명의 식구가 낡고 허름한 식탁에 둘러 앉아 감자를 먹는 장면이다. 램프가 어두운 만큼 식사를 하는 방 안은 온통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등장 인물 모두 거친 노동으로 투박해진 얼굴이지만 감자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표정엔 테오에게 쓴 편지대로 ‘노동의 정직함과 진실함’이 가득 차 있다. 비록 어둡고 좁은 식탁에서 자신들이 직접 일구고 수확한 감자를 쪄 내어 먹고 있지만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끝냈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작품에서 감자뿐만 아니라 투박한 손으로 끓여져 가족 모두의 잔에 담겨지는 뜨겁고 진한 커피를 본다. 아마도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은 다섯 명의 인물 중 맨 오른쪽에 자리한 여인일 것이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방금 끓인 커피가 담긴 주전자다. 가족이 식사를 하는 동안 그녀는 묵묵히 커피를 갈아 주전자에 넣고 펄펄 끓여 냈을 테고 끓여낸 커피를 가족 모두의 잔에 부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감자를 먹으며 대화에 들어왔을 것이다.(여성의 가사노동은 그때도 불평등했다!)

고흐의 조국 네덜란드는 커피의 역사를 얘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중요한 나라이다. 일찍이 커피 생산과 수출을 독점하고 있던 이슬람 지역에서는 커피 재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단히 엄격하게 커피를 관리했다. 커피나무의 묘목은 물론이고 볶기 전 상태의 커피 생두 역시 반출을 철저히 금했다. 반드시 볶은 상태의 커피만을 수출하여 기타 지역에서는 싹 조차 틔울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커피가 자라지 않는 유럽에서 커피 상인들은 이처럼 이슬람의 커피 독점 구조가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예멘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커피 묘목을 몰래 반출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네덜란드인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상인 ‘피터 반 데어 브뢰케’가 훔친 몇 그루의 커피 묘목은 곧 네덜란드 자국 식물원에 이식했는데 이를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심어 대량 재배에 성공했다.

낮은 비용으로 질 좋은 커피를 생산하게 된 네덜란드는 이후 유럽 대륙에서 커피 판매에 성공하여 막대한 부를 얻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사실 네덜란드는 훨씬 이전부터 커피의 운송과 수출입에 관계해 왔다. 이미 16세기 초부터 상류층은 물론 하층민들까지도 가정에서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의 전파 속도가 빨랐던 것이다. 그러니 유럽의 어느 여타국가들 보다도 대중적인 커피 수요가 많았기에 질 좋은 커피를 저렴한 비용을 들여 수입하는 일이 매우 갈급했을 것이다. 커피 생산지의 확산에 네덜란드가 특히 공을 들인 이유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발표된 1885년의 네덜란드라면 커피는 이미 가정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품이었다. 육류와 곡물 대신 감자로 식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농민들조차 식사 시간엔 반드시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고된 노동의 피로를 풀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직접 수확해 먹는 감자와 함께 마시던 저 그림 속 커피는 과연 어떤 커피였고 어떤 맛이었을까? 당시의 네덜란드에서 마셨던 커피는 아라비아 반도 남쪽 예멘 지방에서 생산된 커피가 일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림 속 커피는 왠지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의 고된 노동을 통하여 수확된 커피일 것만 같다. 식민지 인도네시아 농부의 거친 손으로 수확된 커피와 가난한 네덜란드의 시골 농부가 일구어 캐낸 감자라니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억지를 부려 본다면 인도네시아 산 커피의 일부 품종에서는 이른바 ‘흙 내음(Earthy)’이라 일컬어지는 풍부한 향을 지닌 것들도 있기에 들판에서 갓 캐어 낸, 흙냄새가 가득 배어있는 감자와의 조화라면 꽤 훌륭한 콜라보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고흐 자신 또한 커피를 좋아했으니 농부들의 질박한 삶을 그려낸 작품 속에도 커피를 등장시킨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어떤 커피든 그 커피 원두 한 알 한 알은 커피를 생산하는 가난한 농부들의 거칠고 힘겨운 노동의 결정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 커피가 맛있느니 어떤 커피는 형편없다느니 하는 말들은 비록 가볍게 뱉어낼 수는 있으나 결코 커피가 가지고 있는 질고의 무게를 덜어 낼 수는 없다. 이 세상 커피는 모두 나름대로의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커피를 두고 주절거리고 나니 커피 한 잔이 당긴다. 언제 어디서 마시든 모든 커피가 맛있지만 특히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이 시간쯤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정말이지 최고다. 늦여름, 초가을 해넘이만큼 아름다운 광경도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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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리디언스
전광수커피 온라인 커피앤컬쳐 웹진 ‘커피와’ 편집위원. 재즈컬럼니스트, 커피로스터,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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