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私傳_09] 혁명_REVOLUTION


혁명_REVOLUTION

 

술을 금하는 이슬람 사회에서는 술을 대체할 음료가 필요했다. 커피는 바로 그러한 요구에 딱 맞아 떨어졌다. 아랍권에서 커피를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라비아 반도에 커피향이 퍼지고 아랍인들이 유럽에 커피 수출을 시작하자 이슬람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문명은 최고조를 구가하게 된다. 이슬람을 통해 커피를 받아들인 유럽에서 커피를 아라비아 와인이라고 비유하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주목할 점은 아랍이든 유럽이든 커피 대중화의 첨병 역할을 한 곳이 커피하우스였다는 사실이다. 커피하우스는 일종의 해방구로 이곳엔 계급도 없었고 차별도 없었다. 누구나 돈을 내면 커피 한 잔으로 평등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커피하우스를 1페니 대학이라고 불렀던 건 1페니만 내면 계급이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커피 한 잔과 토론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커피하우스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예술과 문학을 논하고 정치를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공론의 장으로서의 커피하우스 역할이었고 커피는 촉매제가 되었다. 유럽의 시민 사회는 이렇게 태동하면서 근대의 시작을 알렸다. 그렇기에 커피는 변혁의 음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554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오픈했을 당시엔 커피하우스란 공간이 각성과 변혁의 장소가 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커피의 각성 작용이 민중을 각성시키고 깨어나게 한다는 것을 알아챈 통치자들은 뒤늦게 커피를 금하고 커피하우스를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커피로 변화의 물결을 만들고 있었던 변혁의 향기는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재밌는 건 한국이다. 우리는 유럽처럼 커피하우스에서 시민 의식이 태동한 건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역사는 갖고 있다. 바로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인 ‘카페’다. 인터넷 강국으로 앞서고 있었던 2000년 대 초기 한국은 일찍이 포털서비스가 잘 발달해 있었고 이들은 카페와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를 앞세웠다. 그리고 이런 카페 서비스가 시작되고 성장할 무렵의 대한민국은 마치 유럽의 커피하우스에서 많은 사회적, 정치적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것처럼 다양한 의견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터져 나왔고 공유되었다. 각종 동호회가 넘쳐나고 정치, 경제, 역사,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담론이 양산됐다. 커피 향 없는 사이버 공간이긴 하지만 유럽의 초기 커피하우스와 그 기능은 똑같았다. 이름도 ‘카페’였으니 이건 역사적 우연을 넘은 필연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시기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원두커피 전문 회사들이 한국에 속속히 등장하는 때와 겹쳐졌던 사실도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인스턴트커피에서 벗어나 원두커피가 대중화되자 소비자들은 시민으로 각성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커피는 변화의 동력이라 생각되는 지점이다. 스타벅스 진출 이후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붐을 이루자 뒤이어 핸드드립 카페뿐 아니라 직접 커피 로스팅을 하는 원두전문점까지 많아지고 있다. 인스턴트커피로 집중된 커피 시장의 쏠림 현상이 이제는 다양해진 형국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똑같은 맛을 내주는 인스턴트커피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커피를 찾는 새로운 커피 질서가 성립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과거와는 다른 커피를 마시게 된 사회라면 과연 어떤 것들이 달라질 수 있을까.

지난 겨울 200만 명이 모여 촛불 집회를 열고 결국 정권이 교체된 일이 있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건만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평화적 시위가 이뤄졌다. 세계사적으로도 유래가 없다고 외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데 중요한 건 이렇게 시민들이 모여 시민의 의사를 정치권에 전달했고, 또 정치권은 응답을 했다는 점이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민주공화국에서 이러한 일은 매우 상징성이 크다. 그동안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대변한다는 충족감이 없었는데 이번 촛불로 시민들은 스스로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주권 회복의 경험을 한 것이다. 이것이 시민 혁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촛불 혁명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거리에 나와 혁명적 시간을 축제처럼 즐기고 있다. 유럽의 커피하우스가 프랑스 혁명과 맞닿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500년 전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카페는 긴 시간을 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온라인 SNS를 거쳐 광장과 링크되었다. 광화문 촛불 혁명은 디지털과 커피가 만나 만들어낸 인류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시민은 이렇게 어느새 변화의 중심이 되었다. 알고 보면 커피 혁명이었던 것이다. 좋은 커피가 촛불이다.

 

[복근이 부러우세요? 그렇다면 갓 볶은 커피!]

 

글쓴이 :소보로
커피 외계도래설 주창자. 전광수커피 ‘커피와’ 웹진 편집장. 커피 잡문집 <커피는 원래 쓰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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