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는 한동안 책장에만 있었다. 빌려준 사람의 성의가 무색하게 집으로 가져와서 들춰보지도 않고 그대로 꽂아만 두었다. 미도리 다방에 소개할 책 중 "이번에 소설은 제외야!"라면서 찾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뜨거운 방바닥에 엎드려 책장을 넘겼는데 나는 방바닥보다 더 뜨거운 맛을 보고야 말았다. 50도까지 지열이 오르는 시칠리아에서 로베르또가 만들어 낸 뜨거운 이딸리아식 요리 맛이었다.
이 책을 지은 박찬일 셰프는 요리와는 상관없는 잡지 일을 하다가 30대 초반에 요리에 흥미를 느껴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이딸리아 삐에몬떼의 요리학교를 이수하고 시칠리아에서 1년간 요리사로 일하다가 귀국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시칠리아에서 생활했던 1년간의 경험담을 한 신문사에 연재했던 것을 묶어 낸 것이다.
시칠리아의 깡촌으로 이딸리아 요리를 배우겠다고 찾아 온 낯선 동양인을 주방 사람들은 로베르또라고 부르며 그야말로 호된 신고식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조리복을 벗으면 서걱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소금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땀을 많이 흘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의 고생담은 그야말로 유쾌하다! 그건 필자가 그야말로 이야기를 맛있게 빚어냈기 때문이다.

주방은 아예 불바다였다. 올리브유에 굽는 마늘 냄새가 자욱하게 퍼지고, 가스 화력을 최대로 높이고 프라이팬으로 열심히 빠스따를 볶아대는 요리사들 사이로 불길이 넘실댔다. 나는 그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다니면서 필요한 재료를 준비해 던져주는 일부터 해야 했다. 사수들에게 총알을 공급하는 탄약수 같은 거라고나 할까. (13p)
저자는 왜 이딸리아에서는 아무 때나 둥그런 피자를 먹을 수 없는지, 레스또랑의 주방장들은 '미슐랭'이나 '감벨르 로쏘'같은 맛 평가 잡지에 얼마나 예민한지, 이딸리아의 토속적인 맛으로 전통적인 방식을 지켜나가기 위한 주방장의 고충이 얼마나 심한지에 대해 거침없고 유쾌한 수다를 어김없이 보여줬다.
요리사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그릇의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통제하고 감시하는 관찰자여야 한다고, 쥬제뻬는 믿었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289p)
시칠리아의 작은 식당 '파또리아 델레 또리(Fattoria delle Torri)'의 주방장 쥬제뻬의 요리사에 대한 철학까지 듣고 나면 당장에 시칠리아의 작은 식당으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파리나 런던, 로마 같은 유명한 대도시가 아니었다. 그곳은 이탈리아의 남부지방 소렌토에서도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포지타노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긴 여행에 지쳐 휘청거리면서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절벽을 빙 돌아 나 있는 마을, 파스텔 톤의 직사각형의 집들이 띄엄띄엄 소꿉장난하듯 모여 있는 곳, 밤이 되면 작은 등이 군데군데 켜지고 레쓰또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곳. 사람들은 그냥 길가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그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시골사람들 특유의 푸근함과 정 때문이었는데 동양인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인지 검은 머리의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한번은 상점 앞에 의자 세 개를 나란히 놓고 앉아계시던 아주머니들이 나를 두고 내기를 하셨다. 한 분은 중국인, 한 분은 일본인, 한 분은 한국인에 거셨고 내가 한국인이라고 했을 때 박수를 치면서 한 아주머니가 펄쩍 일어나셨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나도 덩달아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를 읽으면서 자꾸 포지타노가 생각났다. 아! 아름다운 이딸리아!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은 이딸리아와 이딸리아의 맛까지 보여주는 책이 될 수 있다.
제가 듣기론 요리에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닌 듯. 편집장으로 있었던 잡지가 외식업 관련지였으니까요. 어쨌든 대단한 분이죠. 현재 홍대앞에서 식당 오픈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참, 박찬일씨의 사부이신 주세페씨가 재작년에 한국에 왔었어요.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드시고 싶다해서 어쩌다보니 저에게까지 컨택이 들어온 바람에 우연찮게 카페에서 뵐 수 있는 영광을 가졌었죠. 그 때 알겠됐는데 주세페씨는 로컬푸드 운동 전도사이기도 하더군요. 실제로 방한 당시 한국 쌀로 직접 막걸리를 빚어 이른바 "막걸리 누보"를 만들었던 장본인이기도 합니다.(이게 로컬푸드란 상관있더라구요. 당시 한국은 수입산 쌀로 막걸리를 만드는 회사가 있었으니까요.) 맛은 어땠냐구요? ^^;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지중해 맛일지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