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라닌>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프리타라는 말이 있다. 프리와 아르바이트를 합성한 일본식 조어다.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그렇다고 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사는 멋진 뉘앙스는 아니다. 일본의 버블이 꺼지고 장기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어난 많은 변화 중 일본인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아무래도 종신 고용이라는 신화의 붕괴가 아닐까 싶다. 종신 고용은 일자리 안정뿐 아니라 가부장제를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OS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OS의 도입으로 종신 고용은 시스템 에러를 일으켰고 일본 사회는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탄생한 개념이 프리타였다. 말하자면 버젓한 직장이 없이 이일 저일 전전하면서 하루 하루를 생존해가는 라이프 스타일.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어쨌든 버틸 수 밖에 없기에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이랄까. 이렇게 다운그레이드되는 일본 사회의 OS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의 청춘들은 그래서 답답해한다.(뭐 우리라고 다르진 않지만) 게다가 이들은 뭔가를 스스로 이뤄본 경험이 없는데다가 자신들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나마 한자리 꿰차고 있는 선배 세대들에게 무시당하거나 버려지기 일수다. 마치 싹이나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감자처럼 말이다. 그러나 싹이 난 감자는 독이 있다. 그 독기가 결국 청춘의 에너지가 아닐까. 만화 원작을 영화화한 <소라닌>은 바로 그 청춘의 에너지에 대해 바치는 연가다.
타네다는 프리타. 그라비아 모델 관련 잡지의 편집 디자인을 하면서 동아리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밴드 연습을 하고 있다. 여자친구 메이코와 도쿄 근교의 작은 아파트에서 동거를 하고 있는데 메이코는 이른바 OL. 하지만 그다지 회사의 소속감은 없(어 보인)다. 응큼하고 찌질한 상사와 철없는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그녀 역시 버티고 있다. 이 둘은 대학 음악 동아리에서 만난 커플인데 타네다는 아직도 음악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지만 생존을 위한 현실적 문제로 인해 음악에 뛰어들 순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둘의 주변엔 역시 같은 동아리 출신의 친구들이 서성이고 있다. 물론 이들도 타네다와 메이코의 상황과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막상 회사를 과감히! 때려친 사람은 메이코였다. 타네다는 메이코의 예상과 달리 현실적 부담감에 힘들어하고 이에 메이코도 당혹스러워한다. 그러나 타네다의 현실적 부담감은 오히려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부추겼는지 결국 타네다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친구들을 설득해 밴드에 전념한다. 어렵게 완성한 이들의 CD. 이들은 과연 새로운 인생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부분에서 난 중년 남성들의 로망(희망이 아니라 로망. 그러나 현실은 노망)을 다룬 영화 <즐거운 인생>과 일본의 국민 밴드 ‘미스터 칠드런’이 결성 20주년을 맞아 제작한 <쿠루미>라는 뮤직 비디오가 오버랩 되었다. 두 작품 다 중년 아저씨들의 ‘나 살아있어!’란 외침인데 재미있는 건 모두 밴드로 성공한다는 스토리란 점이다. 왜 이렇게 청춘들이나 중년들이나 밴드에 집착하는 것일까? 밴드의 사회학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즐거운 인생>에선 죽은 친구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잊혀진 악기들을 들고 새로운 모험을 단행하고 뮤비 <쿠루미>에선 중년의 밴드가 새로 시작하는 젊은 밴드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끄는데 뮤비속 중년의 밴드 이름은 ‘미스터 어덜트’ 였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스쳐 지나가는 젊은 밴드 이름 ‘미스터 칠드런’이 된다. 이는 가사 속 등장하는 아마도 옛 애인이나 여자 친구 이름 정도로 추정되는 ‘쿠루미’가 미래:未来를 거꾸로 읽은 쿠루미:来未라는 위트이기도 하다.
다시 <소라닌>으로 돌아와서, <소라닌>속의 로티 밴드는 말하자면 <쿠루미>속의 ‘미스터 칠드런’인 셈인데 이 방황하는 별들은 다가올 미래의 불안함을 친구들의 우정과 연대로 극복하면서 첫 무대에 결국 오른다. 타이틀 곡 ‘소라닌’을 부르면서 이 감자싹들은 자신들의 독기를 마음껏 허공에 뿌려댄다.(여기서도 잠깐! ‘소라닌’은 감자의 독(solanine)과 소라닌(空人, 하늘 나라에 있는 사람. 즉, 죽은 사람)으로 중의적 해석 가능) 바야흐로 젊은이나 중년이나 밴드(연대)를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가질 때가 된 것일까? 결국 또 락뮤직이 세상을 구하는 건가? ㅎㅎ 무슨 소리냣! 이건 그냥 사랑 이야기란 말이닷! 라는 에디터의 일침이 예상되지만 그냥 이렇게 마감하련다. 어쨌든 축축한 늦여름 주말에 <소라닌> 강추합니다!
그럼 사요나라~
참고: <소라닌,2010>과 연결된 청춘 밴드물
우선 <소라닌>에서 타네다역을 맡았던 코라 켄고가 밴드 보컬로 나왔던 <피쉬스토리,2009>
그리고 <소라닌>의 약국집 아들 드러머 빌리, 키리타니 켄타가 출연했던 <BECK,2010>. <BECK>은 이른바 밴드 만화의 지존!을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일본에서 9/4일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