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교역량 1위는 석유라 한다. 그럼 2위는? 잘 알려졌다시피 커피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석유와 커피가 이렇게 전 지구에 퍼지는 이유는 둘 다 에너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전자가 인간이 만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화학 에너지라면 후자는 인간을 깨어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영혼의 에너지다. 재밌는 것은 석유와 커피는 모두 한정된 지역에서만 나며 검은빛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유통되는 과정에서 부의 흐름에 큰 편차를 보인다. 다시 말해 산유국은 막대한 부를 갖고 있지만, 커피생산국은 그렇지 못하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한잔의 커피를 즐기는 동안 지금도 커피 생산국의 커피 농부들은 그들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도둑맞고 있다는 얘기인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공정무역 커피 운동은 이러한 질문과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공정무역의 시작은 아름다운가게였고 이 시민단체를 발안하고 조직한 사람은 참여연대를 통해 시민운동 시대를 열었던 박원순 변호사였다. 박원순 변호사는 아름다운가게의 출범을 위해 유럽의 시민단체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유럽 시민 사회의 공정무역 운동에 큰 울림을 받았고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그 염원이 구현되길 바랐다. 그리고 2005년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무역 사업부를 통해 공정무역 커피가 출시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 서핑을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된 태평양 건너의 또 다른 변호사 딘 사이컨의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행보는 내게 큰 영감을 준 적이 있었다. 미국의 박원순이라 할 수 있는 딘 사이컨은 환경 운동과 국제 노동 문제 관련 소송에 관여하면서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커피 산지의 환경 문제와 노동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급기야 공정무역 커피의 전도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커피 산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바트레커가 된 것이다. 현재는 미국의 보스턴에 딘스빈스라는 공정무역 유기농 커피 회사를 차려(시민단체가 아닌 회사) 산지 개발에서 로스팅까지 공정무역 커피의 단점이라 알려진 맛과 품질을 높이고 전미에 퍼져있는 로스터들과 연대하여 공정무역 커피 보급에 앞서고 있다.
2009년 국내에서 변역 출판된 그의 책 <자바트레커>를 보면 딘 사이컨이 어쩌다 자바트레커가 되었으며 공정무역 커피를 위해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들이 어떻게 그에게 작용하였는지 잘 알 수 있다. 게다가 딘 사이컨은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인물인지 그 엄청난 고행과 고생의 과정을 재치있는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어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정무역이 왜 필요한 것이며 커피 산업의 구조적 모순의 근본적 개혁과 이를 위한 커피 회사들의 나아갈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 점이 이 책의 가치를 빛낸다. 게다가 자바트레킹을 통해 몸소 산지를 경험하고 심지어 커피 로스팅까지 실행하면서 얻었던 공정무역에 대한 고민은 실제 커피 산업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 낸다. 딘의 주장은 간단하다. 소비자들에게 착해지라고 말을 하기보다는 착한 커피 회사를 만들고 품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물론 그의 커피는 가격도 착하다. 비싸지만 의미가 좋으니까 한번 구입해주세요.가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고 맛까지 좋은 커피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을 파고 들자는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커피 회사만을 내세우진 않는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로스터리 카페의 로스터들과 연대하여 공정무역 생두를 공동 구매하고 함께 연구하면서 커피를 통한 소통에 앞장서고 있다.
인스턴트커피를 중심으로 커피를 소비하는 한국의 경우엔 원두커피 위주로 유통되고 있는 공정무역 커피가 파고들 여지가 없었는데 최근 원두커피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고 커피전문점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공정무역 커피에 뒤늦게 뛰어든 한국이 오히려 공정무역 커피 시장 확대의 가능성이 큰 지역이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이제는 동네 편의점에서도 공정무역 커피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커피 전문점들과 생두를 수입하는 일반 회사들이 공정무역 생두를 취급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높은 가격대의 벽은 저렴한 인스턴트 커피에 길든 한국인들의 소비 패턴을 바꾸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벽을 누가 깨주느냐가 관건일 텐데 지금까지는 소비자들이 부담을 지면서 벽을 낮췄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커피 회사들도 함께 참여하여 지속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즉, 기존엔 비용 항목으로 분류되었던 것을 투자 항목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미래 가치 투자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당장현실적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면 시장 자체가 없어져 공멸할 수 있지만, 얼핏 고비용으로 보이는 공정무역에 대한 투자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커피도 고갈될 수 있는 에너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