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 미국 브루어스컵 우승자 앤디 스프렌저(Andy Sprenger)
혹시 사진에서 바리스타의 긴장감을 느끼셨나요? 바로 며칠 전 미국 스페셜티 커피 연합(SCAA) 엑스포에서 진행된 미국 브루어스컵(USBC Brewers Cup) 대회 모습입니다. 브루어스 컵이 뭐냐고요? 쉽게 말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리스타 챔피언쉽의 핸드드립 커피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을 덥히는 주전자나 커피 그라인더를 제외하고는 전동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수동으로 원두 커피를 추출하되, 맛있는 드립 커피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프리젠테이션으로 서비스하는 최고의 바리스타를 선정하는 대회입니다. 운 좋게도 미국 대표 선발전이 있었던 이 브루어스컵 대회에 심판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터라 직접 마시고 본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합니다.

양손으로 물을 부어 한번에 두 잔의 드립 커피를 추출 중인 예선전 참가자
커피의 르네상스기라고 불릴 만한 요즘,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푸어오버(pour-over), 슬로우 커피(slow coffee), 핸드 푸어(hand-pour)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핸드드립 커피가 대세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를 보통 매뉴얼 브루(manual-brew: 수동 커피 추출)라고 부르는데, 주문을 받은 직후에 원두를 갈아서 다양한 수동 기구를 사용해 신선한 커피를 내려주는 걸 말합니다. 좋은 품질의 원두를 판매하는 인디 카페들이 대용량 기계로 내린 일반 드립 커피와는 차별화한 이 매뉴얼 브루 커피를 판매하면서 커피 기구가 양산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많은 핸드드립 도구들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수입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이폰으로 커피를 추출중인 예선전 참가자
하지만, 흥미롭게도 실제 미국 카페에서 이 핸드드립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한마디로 ‘내가 매뉴얼이다’입니다. 한가지 커피 드리퍼에 여러 종류의 필터를 바꿔 사용하기도 하고, 물 붓는 방법, 추출 시간, 커피와 물의 비율 변화 등 미국인들만의 계량화된 핸드드립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 비싸진 가격에 비해 때와 장소, 바리스타에 따라 제멋대로인 커피의 품질과 지루한 고객 서비스에 좌절한 닉 조(Nick Cho: Wrecking Ball커피 대표/USBC Brewers Cup Organizer)씨가 업계의 모범 커피 사례를 찾아 전파하고자 올해 브루어스컵 대회를 창설하게 됩니다.
브루어스컵 대회는 1라운드인 예선전과 파이널 라운드인 결승전으로 진행됩니다. 예선전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대회에서 제공하는 동일한 커피를 사용하여 각자 준비한 도구로 7분간 3잔의 커피(한번에 한 잔씩)를 추출하게 됩니다. 이렇게 각각 추출된 3잔의 커피는 총 3명의 심판으로부터 평가받는데, 심판들은 이때 참가자들이 추출하는 모습은 보지 않고 일종의 블라인드 테이스팅 형식으로 커피의 맛만 심사합니다. 또한 정확한 심사를 위해 커피가 제공되는 시점부터 실내 온도 정도로 식을 때까지 평가는 계속 되며, 아로마/맛/후미/산미/바디/밸런스/총평 이렇게 7가지 항목으로 점수화됩니다. (맛, 밸런스, 총평 점수는 두 배로 가중치가 주어짐) 그리고 각 잔의 TDS(Total Dissolved Solid: 커피의 농도)를 측정해서 2% 이상으로 과추출 된 커피는 자동으로 탈락할 만큼 다각도로 커피의 품질을 평가합니다.
예선전에 쓰인 파나마 에스메랄다 스페셜(게이샤) 커피
이번에 미국 대표 선발전에서는 총 28명의 참가자가 예선에 참가했습니다. 특히 예선전에 쓰였던 커피는 애호가라면 괴성을 지를만한 파나마의 에스메랄다 커피(게이샤)여서 대회 전부터 배 아픈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사실 대회 시작 전에는 아주 좋은 커피가 사용돼서 점수 차별화가 가능할지 우려도 했었지만, 결과는 놀라우리만큼 28잔 모두 항목별로 큰 차이를 보였고 덕분에 맛의 순위를 가리기가 그다지 어렵진 않았습니다. 아마도 게이샤 커피가 원체 다양한 맛과 향을 내는 예민한 커피이기도 했고, 귀한 커피인 만큼 적절한 추출 도구와 사용법을 찾지 못한 참가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선전이 끝나고 심판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눠 보니, 동일한 바리스타가 내린 3잔의 커피조차 각각 맛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핸드드립 커피의 품질과 일관성 대해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고, 또 이런 대회의 필요성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예선전에서 에어로프레스로 에스메랄다 커피를 추출중인 벤 카민스키(Ben Kaminsky)
이틀에 걸친 맛대맛 예선전이 끝나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6명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결승전은 흔히들 알고 있는 바리스타 챔피언쉽과 함께 진행됐는데, 최고의 에스프레소와 최고의 핸드드립 커피를 겨루는 시합이 번갈아 진행되면서 관중 입장에서도 좀 더 볼거리가 풍성해졌습니다. 결승전에서는 참가자들이 개별적으로 준비한 커피와 추출 도구, 테이블 세팅을 사용하며 예선전에는 없던 프리젠테이션 항목이 추가됩니다. 프리젠테이션은 추출할 커피 맛에 대한 설명/고객 서비스/전체적인 인상 이렇게 세 가지 항목으로 평가받게 되는데, 마치 철판요리 전문가가 음식을 맛있게 조리하면서 고객의 관심과 호응을 동시에 이끌어 내듯 커피도 그렇게 제공해달라는 의미겠지요.

케멕스로 온두라스 커피를 추출중인 3위 수상자 에린 맥카티(Erin McCarty)
막상 결승전이 시작되자 예선전과는 달리 카메라 세례와 관중들로 인해 참가자들이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준비한 커피 설명을 까먹기도 하고, 주어진 시간 10분을 넘겨서 자동 탈락하기도 하고, 또 눈맞춤(아이 컨택트)에 실패해 심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등 프리젠테이션에서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무엇보다 커피 바에 앉은 고객의 입장에서 평가했을 때,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지루하게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앞으로 고객 서비스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발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최후 6인의 바리스타들이 준비한 케냐,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온두라스 커피의 맛은 전체적으로 훌륭한 수준이었고, 또한 각자 준비한 커피와 추출도구에 대한 자신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번 미국 브루어스컵 우승은 에티오피아 커피를 비하우스(Beehouse: 추출 구멍이 하나인 세라믹 커피 드리퍼)로 추출한 로스터 출신의 바리스타 앤디 스프렌저(Andy Sprenger)가 차지했습니다. 커피 풍미를 방해하는 종이필터 맛이 적게 나는 추출 도구를 선택했다는 그는, 커피를 내리는 동안에도 편안히 심판들과 눈을 맞춰가며 호응을 이끌어 고객 서비스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특히 본인의 아들을 입양하기도 한 각별한 커피 원산지 에티오피아 방문기를 조심스럽지만 흥미롭게 전달해 관중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세심한 설명과 함께 하리오(Hario) 드리퍼로 와인같은 풍미의 케냐 커피를 제공한 2위 마이클 캐논(Michael Cannon) , 케멕스(Chemex) 드리퍼와 온두라스 커피를 선택한 이유를 즐겁게 설명하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아로마의 커피를 선보인 3위 에린 맥카티(Erin McCarty), 클레버(Clever) 드리퍼에 케멕스 필터를 접목시켜 밸런스가 뛰어난 콜롬비아 커피를 추출한 4위 스테이시 위크(Stacey Wieck) , 종이 필터를 미리 적셔내지 않고도 맛좋은 커피를 추출해보이겠다며 업계 통념에 도전을 선언했던 5위 자레드 검(Jared Gum), 그리고 시간은 초과 되었지만 화려한 테이블 세팅과 직접 준비한 그라인더, 생소한 도구(Karlsbader)로 내린 커피의 길고 깨끗한 후미가 인상적이었던 6위 벤 카민스키(Ben Kaminsky)까지 실로 다채로웠던 결승전이었습니다.

클레버 드리퍼에 케멕스 필터를 접목시켜 콜롬비아 커피를 추출한 4위 스테이시 위크(Stacey Wieck)
3일간 28인의 바리스타가 내려준 총 34잔의 커피를 맛보면서, '조금 더 비싼 돈을 내고, 심심하게 오래 기다려야 하며, 종종 맛의 편차가 있는 현재 수준의 핸드드립 커피 유행을 일반 고객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바쁘기만 한 현실 속 미국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는 아마 가장 골치아픈 메뉴일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대회를 통해 실용적인 추출법과 고객 서비스의 기준을 찾는 노력이 더욱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이제 다음달 네덜란드에서는 세계 브루어스컵 대회가 열립니다. 과연 그간 고민 중이던 카페 사장님들과 커피 애호가들이 무릎을 치며 당장 적용하고 싶어할만한 그런 브루어스 컵이 나올지 기대를 갖고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기계와 캡슐로 내려진 빠른 커피가 흔한 요즘, 사람의 손끝에서 내려지는 멋진 커피 한잔을 위한 열정과 노력만으로도 아름다웠던 지구 반대편 커피 대회 소식이었습니다.
*기사를 위해 멋진 대회 사진을 제공해 준 닉 조씨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런 생각 드실 수 있을 거에요. ^^ 간단히 답변 드리자면, 대부분 음료나 음식에 어느 정도 모두가 인정하는 객관적인 품질의 기준이 있듯이 커피도 와인이나 다른 음료들과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이 각 원산지와 커피 특성을 감안해서 100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하는 객관적 세부 기준이 있습니다. 일단 이 대회도 그런 기준을 바탕으로 누가 마셔도 맛있고 흡족한 커피와 서비스를 찾는게 목적이고, 따라서 예선전에서 동일한 좋은 커피를 사용하는 이유기도 하구요. 또한 대회 심판들은 개인의 취향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도록 이미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와인 평가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감각으로 하는 평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어느정도의 오차는 피할 수 없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