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제주로 떠나기


제주 버킷리스트
한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문구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된 적이 있었다(사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있지만…) 그런가 하면 하루에 서너 시간의 수면만으로 평생을 일했다는 대통령을 5년동안이나 지켜보곤 했었다(그랬으니 하는 일마다 그 꼬라지였지만…) 이쯤 되면 우리의 노동은 자아실현을 넘어 가히 다른 모든 향락을 대체하는 가장 강력한 가치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의 성과 중심주의 노동 현실은 인간을 끊임없이 노동의 연속선상으로 몰아붙인다.

우리는 노동에 대한 중독을 워커홀릭 따위의 근사함으로 치장된 용어로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에 빠져있음으로 해서 잃어버리고 있는 삶의 다른 가치들이 훼손당하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휴대폰은 늘 켜져 있으며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에도 직장에 복귀하면 곧 해내야만 하는 일의 순서가 머릿속에 가득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여 성과를 냈다면 곧바로 좀 더 큰, 또는 다른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내기 위해 또 달려야만 한다. 때론 가족을 위한 노동인지, 노동을 위한 가족과 가정인지 구분이 모호한 상황에 직면할 때도 있다.

‘제주 버킷리스트 67′(대숲바람)의 저자 ‘이담’은 이런 노동의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한점이나마 잠시 쉼표를 찍어야만 할 바로 그때에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라고 조언한다. 이 책 ‘제주 버킷리스트 67’은 고만고만한 여느 제주 여행서와는 격을 달리한다. 여행서라면 으레 있어야 할 사진 대신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정가애’의 제주 빛 푸르름이 가득한 일러스트와 여백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바로 빽빽한 일상에서 쉼표를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다.

버킷리스트 하나하나를 찬찬히 읽다 보면 저자 이담의 버킷리스트일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의 제주 버킷리스트 작성을 위한 친절한 참고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건 67개의 리스트 중 거의 마지막쯤의 66번째 항목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기’라는 것. 버킷리스트가 ‘하고 싶은’ 것의 목록이라고 정의한다면 이거야말로 역설적인 게 아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버킷리스트라니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사실은 그것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팟캐스트 ‘초호와 소보로의 커피전성시대’ 녹음 현장에서 만난 저자는 그간 10년을 살았다는 제주를 잠시 뒤로하고 노란 트럭에 수동 로스터와 핸드드립 도구를 싣고 사람이 모인 곳이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커피를 나누며 교감하고 소통하는 여행을 하고 있단다. 마치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제주 ‘바람 카페’의 이름처럼 제주의 바람을 닮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 팟캐스트 녹음 중 내내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버킷리스트의 모든 항목을 경험해봤을까? 물어보니 해본 것도 있고 아직 못해 본 것도 있단다. 10년을 살았어도 못해 본 것이 있다면 적어도 저자에게는 아직 제주에서 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제주 버킷리스트 중에서 어떤 걸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해달라는 나의 질문에 저자 이담은 우선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먼저 끊으란다.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다.

가을 제주에서 마셔야할 커피가 있다면?
커피 팟캐스트 이담의 바람커피로드 듣기

글: 리디언스(트위터 @eunaboy)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중년의 커피 로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