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


커피는 강한 치유력을 가진 건강 음료일까, 아니면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해로운 음료일까. 오늘날 커피를 둘러싼 이러한 논란은 비단 현대에 들어와 불거진 건만은 아니다. 커피가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의 야생에서 발견되고 이슬람 지역에서 음료로서 맹위를 떨친 다음, 유럽으로 전파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하는 논쟁이다.

커피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에티오피아의 고산지대 야생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에티오피아인은 오늘날과 같이 음료로서 커피를 마신 건 아니다. 커피 열매를 곱게 빻은 후 이를 동물성 지방과 혼합하여 이른바 지금의 초코바 형태로 빚고는 힘이 필요할 때나 부족 간의 분쟁 시 전투에 임하기전 일종의 ‘에너지바’로 먹었다. 또 잎은 잘 말린 후 물에 넣고 끓인 후 따뜻한 차로 우려 마셨다고 한다.

그러던 커피는 15세기 이후 에티오피아 야생을 떠나 홍해를 건너 예멘의 이슬람교도 즉, 수피교도들에 의해 비로소 지금과 같은 음료형태의 커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초기 커피는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다. 이슬람교는 교리상 알코올 섭취를 금지했는데 술 대신 커피는 수피교도들이 종교적인 무아지경에 빠질 때, 혹은 밤새 코란을 외우고 필사를 하고 기도를 하는 등 일련의 종교적 행사에 무수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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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지역에서의 커피 확산이 종교적인 이유에서였다면 유럽에서 커피가 급속히 퍼진 데에는 다른 요인이 담겨있다. 예컨대 1582년 독일에서 발간된 <동양여행>이라는 책에는 아픈 사람에게 좋다거나 특히 위장에 좋다고 기술되어 있다. 또 1610년 영국의 어느 시인은 “소화를 돕고 몸에 활기를 준다”고도 했다. 이를 미루어 짐작컨대 이슬람과 유럽 두 세계가 커피를 마주하고 대했던 양상과 태도는 매우 상이했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아마도 커피를 금지해 주기를 바라던 사제들의 요청에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 보고는 “이교도가 마시는 악마의 음료가 이렇게 맛있다니 우리도 커피를 마실 권리가 충분하지 않은가”라며 오히려 커피에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거로 봐서 커피가 주는 탐미적인 매력은 지역을 막론하고 억지로 누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8세기 말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커피콩 알갱이 60개를 정확히 세고 분쇄한 후 한 잔의 커피를 끓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그 유명한 ‘커피 칸타타’에서 커피에 푹 빠진 어느 귀족의 딸을 통하여 커피에 사로잡힌 유럽 귀족의 생활상을 알리기도 했다.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예멘에서 생산되는 ‘마타리’ 커피를 즐겨 마시며 인류에게 찬란히 영속하게 될 수많은 명화를 남겼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더욱더 커피를 예찬하는 수많은 예가 있다. 밥 딜런의 1976년 <Desire>라는 앨범에 수록된 ‘One more cup of coffee’라는 노래는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떠나기 전 한 잔의 커피를 달라고 애절하게 부르고 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는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카페에서 커피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치유를 베풀어 주는지를 느낄 수 있다. 18세기 계몽주의 탄생과 프랑스 대혁명의 단초도 바로 커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수한 사상가들이 카페에 모여 토론할 때 마신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 뇌를 깨운 것이다. 이렇게 유럽의 근대는 한 잔의 커피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럽 사회에서 커피의 영향은 지대했다고 비약할 수도 있겠다.

한 잔의 커피가 주는 위로와 치유 기능을 단순히 의학적, 과학적 증명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모든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만큼은 이보다 더 단순하고도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또 없을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이로써 현대인들은 커피를 통해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커피를 느리게 마심으로써 우리는 깊은 사유에 빠질 수 있다. 사유는 성찰을 낳고 창의성을 높여주며 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각성의 상태를 유지시켜 준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커피가 건강음료인가 아닌가의 논쟁은 이미 의미가 없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커피는 인류 역사상 지역을 막론하고 누구나 마시고 예찬하는 대상이 된 건 아닐까?

다시 밥 딜런의 노래를 들어보자.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행위는 단순히 무엇을 마신다는 의미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나아가 커피를 통하여 자신을 자각하고 성찰하는 깨어있는 지성으로서의 각성 상태를 지속시킨다면 커피가 주는 유용성을 누리는데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광고] 밥 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와 찰떡 궁합 커피

글쓴이: 리디언스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중년의 커피 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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