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나빠도 우리는 움직인다. 아무리 좋아도.


내가 올리버 색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몇 년 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였다. 자칫 지루하고 딱딱할 수 있는 신경과의 임상 사례들을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간 그 책을 보며 나와 같은 이 지구 상에 이렇게 글 잘 쓰는 멋진 남자가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요즘말로 완벽한 뇌섹남이라고나 할까?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작년 2015년에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82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살아선 다시 그를 만나볼 수는 없겠구나 싶어 실망하던 차에 매력적인 푸른색 표지에 다수의 사진이 실려있는 그의 마지막 회고록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것은 전혀 새로운 올리버 색스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마치 지적인 용광로에 뛰어들었다가 겨우 빠져나온 듯 책장을 덮고 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황홀한 감정이 밀려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게 여느 자서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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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나는 그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그가 만나왔던 사람들, 예컨대 그를 돌봐주고 그의 편지에 정성 어린 답장을 보내주었던 레니 이모부터 친구 톰 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캐럴 버넷 같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부터 이름만으로도 아우라를 느끼게 하는 유명인들, 피터 브룩, 템플 그랜딘, 로빈 윌리엄스, 조너선 밀러, 스티븐 제이 굴드 등까지 함께 만나고 싶어졌다. 물론 그가 빠져들었던 일들에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그가 여행했던 도시들까지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가 좋아했다는 소철이 자라고 있는 식물원에 가서 올리버처럼 소철과 함께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소철이 있는 식물원을 검색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태 운전면허 없이 살면서 자동차 없음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으나 BMW 바이크 R60에 가죽 재킷을 입고 걸터앉아 역도로 단련된 근육을 뽐내고 있는 그의 젊은 날 사진을 보고 있으니 나도 당장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게 바로 그의 매력인 것 같다. 뭔가 그로 인해 변화하고 변하고 싶게 만드는 것 말이다.

책에는 페이지마다 친절하게 각주가 달려있어서 48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으며 나름 재미있는 놀이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숫자를 좋아하는 나만의 작은 즐거움이었는데 책 내용 중에 ‘수’와 관계되는 내용이 나오면 따로 기록을 해두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36이라는 수는 ‘라미드 우프닉스(Lamed Wufniks)’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36명의 의로운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자신이 의인인 줄 모르며 서로 간에도 모른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의인인줄 알게 되면 죽고 즉시 새로운 의인이 태어나며 이들이 있는 한 신은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올리버 색스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그리고 그의 사람도 그 누구의 삶과도 다르지 않게 시련과 절망과 고통이 있었으나 그는 스무 살에도, 스물일곱 살에도, 서른두 살에도, 그리고 일흔일곱 살에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고 씩씩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책 맨 앞장에 쓰여있는 키르케고르의 말을 덧붙인다.
“인생은 앞을 향해 살아가지만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봐야 한다.”
*사진 출처: 헤더 이미지는 올리버 색스 트위터 대문 사진, 본문 사진은 홍준희 찍음


글쓴이 : 홍준희
동화작가, 여행칼럼리스트, 독서큐레이터, 엄마로서 긴 육아기를 끝내고 올해부터 아직 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삶의 마지막까지 활기차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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