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의 점괘


가끔 점을 보러 간다. 아니, 1~2년 만에 한 번이니까 `가끔’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도저히 참기 어려운 궁금증 때문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가족들이 건강할지? 일은 잘 될지?’ 같은 평범한 질문들을 하고 온다. 단골도 없고, 친구들이 추천하는 집을 돌아가며 가다 보니 다양한 점쟁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얼마 전엔 점성술로 점을 봤다. 우주의 움직임으로 내 인생을 점치다니 꽤 신선했다.

점집은 아주 가끔 가지만, 점은 매일 친다. 커피점. 뜨거운 물로 드리퍼에 넣은 커피를 골고루 적시면 커피가루가 물에 젖으면서 소위 `커피 머핀’이 봉긋이 올라온다. 매일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잘 구운 초콜릿 머핀처럼 둥글고 표면이 매끈하며 중간이 꺼지지 않으면 성공! 향긋한 향기를 풍기는 이 머핀은 안타깝게도 곧 쪼그라들지만 맛있는 커피를 남길 뿐 아니라 주변을 향기로 가득 채워준다.

처음에 커피 머핀(커피 빵이라고도 한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무척 귀엽다고 생각했다. 마치 `우리 집 고양이가 식빵을 구워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어떤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귀여운’ 표현인 것이다. 사실 말은 들었어도 내가 만들어낼 수 있을지, 정확히 어떤 건지 몰랐는데(고백하자면 드리퍼 산 지 얼마 안 됐다) 어느 날 커피 머핀을 실제로 만들어냈을 때의 기분이란! 와, 이런 게 머핀이었어?! 이렇게 예쁘고 폭신폭신해 보이는 거였어?!

drip

그날 이후 드리퍼에 물을 붓는 그 순간마다 두근두근, 빵을 굽는 기분이다. <카모메 식당>에서처럼 커피에 손가락을 넣은 후 “코피 루왁!” 하고 주문을 외우지는 않지만 분명 나도 어떤 주문을 외우고 있다. 하쿠나 마타타, 수리수리 마수리, 아브라카다브라! 어떤 역학자도 증명해주지 않았지만, 아침의 커피 머핀이 예쁘게 부풀어 오르면 그 날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커피나 차로 점을 치는 습관은 먼 옛날부터 존재했다. 사실 찻잎의 모양이라는 건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어떤 거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차를 마신 후 남은 찻잎의 모양을 읽어 점을 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찻잎의 모양을 판독하여 뱀이 나오면 반목이나 거짓, 스페이드가 나오면 사업 성공, 집이 나오면 변화나 성공이라고 하니 앞으로 차를 마시고 나면 꼼꼼히 체크해보시라. 찻잎의 모양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사람들을 위한 도구도 있었는데 점치는 찻잔이 바로 그것이다. 찻잔에 12궁이 표시되어 있어 찻잎이 어느 부분에 떨어져있는가를 살피면 점괘가 나온다. 만렙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미래를 점칠 수 있게 만든 도구 같다.

터키인들은 커피로 점을 쳤다. 터키 커피는 뜨거운 물에 곱게 간 커피를 넣어 끓인 후 필터링하지 않고 마시는지라 잔에 커피가 남기 마련인데, 커피 잔여물의 모양을 읽거나 잔을 거꾸로 뒤집어서 커피가 떨어진 모양을 관찰하며 점을 친다. 터키의 커피점은 보는 방법도 여러 가지로 발달해서 이것만 알아두면 서먹한 사람과 만나 커피를 마시다 화제가 떨어져도 심심하진 않을 듯하다. 아무튼 인간은, 커피를 마시다가도 미래가 궁금한 동물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며 하루 운세를 점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라고 합리화한다) 갈색 머핀이 잘 부풀어 올라 먹음직스러운 형태가 되면 `오늘 하루도 하는 일이 잘 풀릴 거야’라고 생각하고, 평소와 똑같은 세심함으로 물을 부었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부풀기는커녕 커피가 푹 꺼져 들어가면 `택배 아저씨 오는 길이 막히려나’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머핀이 잘 부풀어 오르는 데엔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커피 원두가 신선해야 한다는 것. 오래된 원두는 아무리 드립을 잘해도 머핀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원두의 양도 적으면 안 되고, 붓는 물의 줄기는 가늘어야 한다. 굵게 분쇄된 커피보다는 가늘게 분쇄된 커피가 더 잘 되고, 미리 갈아놓지 말고 마시기 직전에 분쇄하는 게 좋다고. 원두를 볶을 때 생긴 탄소가 빠져나오면서 부풀기 때문에 약배전보다 강배전 커피에서 머핀이 잘 나온다고도 한다. 사실 완벽한 형태의 커피 머핀이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의 결과인 것이다.

오늘 아침의 커피 머핀이 잘 부풀어 오르지 않은 건, 오늘 꼭 받아야 하는 택배가 밀린다는 뜻이 아니라 성질 급한 내가 평정심을 잃고 커피를 빨리 마시겠다는 욕심으로 물을 확 부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아침의 머핀이 잘 부풀어 오른 건, 마트에서 한우 등심 세일을 발견한다는 점괘가 아니라 새로 도착한 원두 봉지를 뜯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난 인과 관계가 없는 일들을 결부시켜놓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리라.

하지만 이런 모든 과학적 팩트를 아는 난 여전히 매일 아침 “하쿠나 마타타!” “맛있는 커피여, 나와라!” “잔혹한 예가체프의 테제!” 따위의 주문을 외치며 커피점을 치리라. 내 멋대로 점괘를 뽑아낸 다음, 좋은 점괘는 받아들인다. 시원찮은 점괘는 잊어버린다. 커피 머핀이 잘 부풀어 오르면 즐거워하며 오늘 있을 좋은 일들을 상상하지만, 커피 머핀이 푹 꺼진 날은 쉽게 잊어버린다. 어차피, 오늘은 오늘의 점괘가 있고, 내일엔 내일의 점괘가 있는 걸.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내일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다음 날 일어날 거야.

그것이 내 생활 속의 작은 오컬트. 우리 집엔 제멋대로의 커피점쟁이가 산다.

 

글쓴이 : 이지영
광고 만들고 음악 듣고 아이를 키우고 커피를 마십니다. 사소한 것들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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