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고 딴소리: 이별까지 7일


1980년대 말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그 후 10년 이상의 장기 불황이 계속되는데, 일본 사회는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한국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회적 큰 변화를 맞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버블 붕괴를 경험하면서 전통적인 일본 사회의 가치(그것이 좋던 나쁘던)들이 많이 사라져갔다. 대표적으로 일본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기업들의 종신고용제가 무너진 것이다.

종신고용제는 한마디로 회사가 직원의 생계는 평생 책임질 테니 직원은 회사를 위해 일생을 바치란 건데 실제로 이 제도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무라이처럼 일본의 회사원들을 경제 전쟁 최전선으로 내모는데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경제 사무라이 덕분에 일본은 태평양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회사원들이 회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동안 그들의 가족들은 철저히 소외를 받았다. 그렇기에 종신고용제의 붕괴는 회사의 인력이 감축되는 구조조정이라는 경제학적 언어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출근할 회사가 없어진 사무라이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당장의 먹고 사는 일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족을 대면하는 일이 보다 큰 어려움이자 괴로움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돈을 벌어다 준다는 것만으로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간 가족보다 회사를 우선으로 살다보니 이들은 철저히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종신고용제란 굳건한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가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배제된 회사원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고 이는 90년 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 홈리스와 자살의 증가를 가져오는 사회학적 문제까지 연결되었다.

한편, 사무라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청춘을 회사에 바치는 동안 남겨진 가족 구성원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을 진 몰라도 가장이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 것처럼 남겨진 가족들도 가장에게 소외당했기에 서서히 가족이란 틀도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지메 문제로 등교를 거부하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가족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이런 자식 문제로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큰 혼란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회사에만 몰두하는 아빠들이 함께 발 벗고 나선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일본의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 발생했고, 결국 이들도 자살을 선택하는 비극의 순환이 계속되었다.

이처럼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의 가정은 균열이 생기게 되었고 일본 사회는 조각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90년대와 21세기 초반 일본 사회의 키워드는 ‘살아라’, 였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일본 동북부 대지진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서서히 경기가 회복되어 과거의 영화를 재현해보려는 재기의 꿈을 단박에 부숴버렸다. 그로부터 4년이 되었지만 방사능은 구조조정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재앙이 되어 일본인뿐 아니라 세계인들을 위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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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조용히 개봉했던 <이별까지 7일>이라는 일본 영화에 그 해법의 단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느닷없이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엄마를 위해 뭐라도 해보려고 가족이 모이면서 그동안 몰랐던 엄마의 속내를 알게 되고, 소원했던 부자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는 가족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 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도쿄 교외에 어렵게 마련한 작은 2층집을 유지하기 위해 빚을 떠안고 살아가는, 여전히 잃어버린 10년의 자장 안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아버지. 지금은 능력 있는 번듯한 직장인이지만 중학교 시절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생활로 가족을 힘들게 했던 장남. 번번히 엄마에게 손을 벌리는 철없어 보이는 대학생 둘째 아들. 그리고 이 철없는 세 남자를 돌보면서 자신의 내면 세계를 감춰왔던 엄마. 이런 네 명의 가족은 앞서 언급했던 일본 사회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투영된 인물들이다.

가족 안에서 엄마의 부재가 어떤 상황을 만들지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자신의 손으로는 단 한 번도 밥을 해보지 않은 일본의 가장들, 다시 말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장이면서 뭣 하나 똑 부러지게 해결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가장은 아내가 뇌종양으로 입원을 하자 어쩔 줄 몰라 한다. 다행히 독립하여 출가한 아들 둘이 찾아와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고, 두 아들은 엄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필사적으로 뛰어다닌다. 그러나 엄마의 치료비를 구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주택 구입과 사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떠안고 사는 아버지에게 개인 파산 신고를 하라고 하는 장남. 하지만 파산을 했다간 보증을 선 장남에게 빚 폭탄이 돌아가는 상황. 게다가 장남은 조만간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곧 아버지이자 가장이되는 것이다. 장남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최근 일본 영화계는 <이별까지 7일>보다 앞서 제작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비롯하여 세계적 영화감독이었던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를 재해석한 야마다 요지 감독의 <동경가족>과 같은 작품까지 가족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다.(참고로 <이별까지 7일>의 원제는 ‘우리들의 가족’이다.) 버블 붕괴 후 20년을 겨우 버텨내자 다시 동북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미증유의 재난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결국, 가족 안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힘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방송인인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 했으며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일본엔 희망이 없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별까지 7일>의 이시이 유야 감독은 그들과 달리 가족에게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새로운 희망 찾기에 비하면 한국은 절망의 심연에 갇힌 느낌이다. 하지만 희망은 절망에서 싹트는 법이니 이제라도 나와 내 가족을 포함한 주변을 돌아보자. 그곳에 답이 있을 것이다.

 

글:소보로(트위터 @coffeens) 동네 서점 카페 ‘우주소년’ 컨텐츠 프로듀서, 커피활동가. <커피는 원래 쓰다>란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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