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한 노래


한여름의 열기는 이미 식어서 사라졌고 해가 진 후에는 풀벌레 소리가 요란해 진 걸 보면 확실히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추석이 이제 요 며칠 앞으로 다가왔으니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고향 생각이며 가족 생각에 살짝 들뜬 기분이 들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앨범은 따듯한 가족을 생각할 수 있는 앨범이면 좋겠다 싶어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의 ‘Song for my father’를 골랐다. 호레이스 실버가 가족들과 함께 연주를 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앨범명이자 타이틀 명이 Song for my father인 것처럼 아버지를 위한 헌정곡이기 때문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는 역시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0살 무렵부터 색소폰을 부는 등의 음악적인 재능을 가지고 성장했다. 전문 연주자로 성장한 이후로는 아트 블레이키, 케니 도햄, 행크 모블리 등과 ‘재즈 메신저(The Jazz Messengers)’를 결성하여 하드밥의 발전과 융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연주자로서 당시 재즈 씬을 주도했던 비밥(be bop)의 열기를 뚫고 하드밥(hard bop)의 전성기를 열었던 연주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젠가 그의 ‘재즈 에세이’에서 Song for my father를 일컬어 ‘불가사의한 존재감을 지닌 곡’이라고 평했던 적이 있다. 대체 어떤 곡이길래 그렇게 말했을까. 하루키가 책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곡이 가진 리듬의 바탕은 ‘보사노바’이다. 그러나 스탄 게츠(Stan Getz)의 보사노바와는 어딘가 모르게 사뭇 다르다. 스탄 게츠의 보사노바가 낭랑하고 도시적인 세련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곡에서의 보사노바는 묵직하고 블루지한 톤이 전면에 깔려 있어 흥겨움과 더불어 알듯 모를 듯 아련한 감성을 느끼게 해 준다. 아무튼 Song for my father의 리듬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호레이스 실버의 재즈를 일컬어 펑키 재즈이면서도 소울 재즈라고 부르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필자 역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비교적 일찍 세상을 등지셨던 아버지셨기에 특히 이맘때 이 앨범을 집어 들게 되면 재킷 속 노신사의 미소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흥겨운 리듬 속에 담겨 있는 짙은 우울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버지는 평소 무척 과묵하셨고 당신을 위한 즐거움은 별로 누리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분이셨지만 나름대로 당신만이 즐기고 싶어 하던 몇 가지는 가지고 계셨나 보다. 그중 하나가 음악이었고 특히 유행가보다는 클래식과 재즈를 들으셨다. 고교 1~2학년 때의 요맘때쯤 가을 어느 날이었다. 마당 평상에 앉아 담배가 가득 채워진 파이프에 불을 붙이시고는 가을엔 브람스를 듣거나 아니면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를 들으라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기억하고 경험한 아버지의 성격과 취향대로라면 마일즈 데이비스는 역시 어울리지만 솔직히 호레이스 실버는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호레이스 실버 하면 연상되는 ‘펑키 재즈’의 뉘앙스가 워낙 강해서일까? 아주 좋아하셨을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앨범명이자 타이틀곡 이름이 Song for my father 이니만큼 이 앨범을 집어 들 때마다 매번 파이프를 무시고 웃는 듯 아닌 듯 먼 곳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선하신 모습이 떠오른다. 마침 앨범 재킷의 사진마저 굵은 시가를 입에 물고 옅은 미소를 짓는 호레이스 실버의 아버지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건 생전의 아버지께서 Song for my father를 들으셨다면 펑키 재즈의 유쾌함으로 들으셨을까 아니면 소울 재즈의 블루지함으로 들으셨을까? 하는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도 펑키 재즈의 유쾌함을 알고 계셨나요? 지금이라도 즐겨 보세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실 우리 아버지…”

조용히 여쭈어보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재즈와 함께라면 더욱 향기로운 가을블렌드 중추가배!!]

글: 리디언스(트위터 @readiens)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중년의 커피 로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