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어떤 기억_더 스크랩


1982년이라면 한창 재즈에 내 눈이 뜨일 무렵이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고교 3학년 때였다. 재즈가 무슨 음악인지, 왜 내 마음을 그토록 잡아당기는지 조금은 알겠다 싶은 시절이다. 그렇게 내가 재즈에 기웃거릴 즈음 태평양 건너 뉴욕에서는 재즈가 어떤 상태로 존재했을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현재 재즈의 레전드로 일컬어지고 추앙받고 있는 연주자들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특별할 것 없는 저녁 어스름에 홍대 어느 카페나 바에 가면 ‘스탄 게츠’가 연주를 하고 ‘밀트 잭슨’의 비브라폰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하면 술 한 잔을 걸치고 들어간 서촌의 모 카페에서는 ‘덱스터 고든’의 색소폰을 들을 수 있더라’는 식이다. 어디 그뿐이랴 쳇 베이커의 멜랑꼴리한 목소리 또한 별반 어렵지 않게 들을 수도 있다. 세상에나 덱스터 고든과 쳇 베이커라니… 잘하면 쳇의 노래를 바로 코앞에서 들을 수도 있고 덱스터 고든이 멋지게 뿜어내는 담배 연기를 맡을 수도 있겠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였음에도 이렇게 달랐던 세계가 존재했단 말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더 스크랩]은 하루키가 1982년~1986년까지의 미국 잡지를 읽으며 그 중 재미있겠다 싶은 기사를 하나 골라 ‘스크랩’ 하고 원고를 작성해 기고한 글들이다. 위에 소개한 뉴욕의 재즈 클럽 이야기는 그 중 한 편이다.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가 많으나 무엇보다도 재밌는 세상의 일들을 담담히 기록해 놓은 글들이라 쉽게 읽힌다. 더욱이 좋은 건 하루키의 시각으로 바라본 당신의 몇몇 사건(나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이 내가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에피소드를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려 준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카펜터스’의 멤버였던 ‘카렌 카펜터’의 급작스러운 죽음 같은 것이다. 비록 존 레논 같은 거물급 인사의 사망 소식은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거식증이란 생소한 병 명을 인식하는 계기는 되었지만. 당시 카렌 카펜터스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나는(대학에 합격은 했으나 아직은 개강 전이었던 늦겨울) 광교 어디쯤의 레코드 숍으로 일부로 나가 LP를 하나 샀고 왕십리에 있던 카페 ‘장미의 숲’에서 당시 여자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 거식증에 대해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었던 일을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 책을 읽으며 건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말하자면 그런 것들(개인에게나 의미 있을 사소함들)을 기억하게 해 주는 재주가 이 책에 있다.

나는 종종 1980년대를 어둡고 칙칙하고 무섭고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지 못해 끙끙대던 불행의 시대라 말하곤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났더니 어둡고 무서운 시대였음에도 낭만과 희망, 패기 또한 병립하여 존재했던 시대였던 것도 같다. 그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마도 순전히 ‘젊음’ 때문이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그 삭막했던 시대에 어떻게 낭만과 패기가 들어올 수 있겠나.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지난 1980년대는 나에게 아픔이고 추억이자 사랑이다. 그 여자 친구는 소식을 들어보니 일찍 결혼해 경주에 내려가 살고 있다던데 길거리에서 만나면 서로가 알아보기는 할까? 고작 책 한 권 읽으며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한다. 나이가 든 탓이다.

[커피는 재즈다!-재즈와 어울리는 커피 한 잔]

글: 리디언스(트위터 @readiens)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중년의 커피 로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