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란드그렌


마치 트럼펫 대신 트롬본을 잡은 쳇 베이커(Chet Baker)라고나 할까? 그러나 관악기를 부는 연주자이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만 같을 뿐 닐스 란드그렌(Nils Landgren)과 쳇 베이커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스웨덴 출신의 닐스 란드그렌은 6살부터 드럼으로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해 13살때 잡은 트롬본으로 클래식을 공부하여 그룹 ‘아바(ABBA)’와 ‘허비 행콕(Herbie Hancock)’등과 같은 거장들의 음악 작업에 참여한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경력이다.

서두에 쳇 베이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고 언급한 것은 쳇 베이커가 그의 삶과 음악을 통해 우울하고 어두운 정서를 숨기지 못했다면 닐스 란드그렌은 그와는 정반대의 음악을 추구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그가 이끌고 있는 밴드 ‘펑크 유닛(funk Unit)’은 1994년 ‘Live in Stockholm’을 기점으로 10여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펑키한 리듬과 그루브로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그들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직접 보컬을 담당하며 1999년 앨범 ‘Ballads(ACT 9268-2)’를 내놓을 때만 해도 재즈계에서는 펑키한 리듬에서 잠시 일탈을 시도하고 싶었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당시 필자는 솔직히 닐스 란드그렌의 펑키 유닛에는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단지 호기심에 ‘Ballads’를 집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뿔싸. 앨범의 첫 트랙 ‘You Stole My Heart’를 듣는 순간 아… 하고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필자가 끌던 차가 소형차였던지라 지금 생각하면 아주 형편없었던 카오디오 시스템과 스피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마지막 11번째 트랙이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차 안에서 닐스 란드그렌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특히 나즈막이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로 듣는 ‘Killing Me Softly’는 로버타 플렉(Roberta Flack)이 불렀던 원곡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 후 단 한 번의 일탈로 끝날 것 같았던 그의 발라드 앨범은 반갑게도 2002년 ‘Sentimental Journey – Ballads 2 (ACT 9409-2)’ 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고 전작 Ballads에 못지않은 히트를 기록한다. 그러나 역시 그의 음악적 본향이 펑크 재즈여서 그랬을까? 말랑말랑한 발라드 앨범은 이제 그만이라고 확인시키듯 이후로는 좀처럼 같은 류의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긴 공백기를 갖고 있다가 드디어 2011년 세 번째 앨범으로 ‘The Moon The Stars And You'(ACT 9505-2) 를 내놓았고 2014년 올해 또다시 그의 통산 네 번째 발라드 음반인 ‘Eternal Beauty'(ACT 9562-2)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중 필자가 생각하는 베스트앨범은 바로 2002년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Sentimental Journey 이며 그중에서도 베스트 트랙은 두 번째 트랙 ‘Ghost In This House’ 이다. 원래 이 곡은 컨트리 장르의 곡으로서 실연을 당한 상황을 리얼하게 표현한 가사로 유명한 곡이다. 닐스 란드그렌은 여기에 멜랑꼴리한 그의 목소리를 통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그래 맞아. 나도 그랬었어’하고 공감하도록 만든다. 감당할 수 없는 실연에 대한 아픔을 이토록 담담하게 그려낸 곡이 또 있을까?

유난히 비극적이었고 잔인했던 지난 4월을 생각하면 실연의 아픔을 감상한다는 게 그리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거꾸로 실연의 아픔 대신 사랑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했던 그 어떤 시절, 순간들에 대한 기억으로 치환하여 들으려 한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은가. 사랑에 빠졌든, 실연을 당했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속수무책인 상황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화사한 5월. 희망의 노래를 소개하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아직은 깊은 우울과 슬픔에 빠져 침잠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기에 다소 어두운 곡을 소개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사랑과 실연,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은 서로 공존한다.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삶이다. 필자는 지난 4월 호의 칼럼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서도 다음 봄엔 다시 꽃을 피울 거라는 약속을 믿자고 했다. 지금 고작 그런 말이 위로가 되겠냐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은가. 이럴 땐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서로를 바라보며 의지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겠나.

슬픔과 비탄에 빠졌지만 그래도 힘을 내자.
앞으로 우리가 살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해도 어디 설마 지난 4월 만큼이야 힘들까.

글: 리디언스(트위터 @readiens)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중년의 커피 로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