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and’ing_말로 3집 ‘벚꽃지다’


4월. 남도에서의 꽃소식이 엊그제 같더니만 어느새 온 세상이 꽃으로 지천이다. 그러나 피는가 싶으면 곧바로 떨어지는 게 꽃이다. 특히 봄꽃은 더욱 그렇다. 봄 꽃 중에서도 피었다가 지는 속도가 으뜸인 꽃은 단연 벚꽃이다. 찰나에 피었다 찰나에 지는 꽃이기에 어떤 꽃에도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가벼운 빗방울에는 물론이고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의 훈훈함에도 벚꽃 잎은 여지없이 흩날린다. 그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은 비장함을 느끼다 못해 차리리 처연하다. 벚꽃의 매력은 그 화려함에 대한 찬사가 퍼지기도 전에 지는 것이에 있지 않을까. 마치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 발하는 노을의 그 빛이 아름다운 것처럼…

​필자가 특히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인 이맘때면 습관처럼 당연하다는 듯 집어 드는 음반이 하나 있다. ‘말로 3집 벚꽃지다'(malo 3 벚꽃지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재즈 보컬인 재즈 싱어 ‘말로’가 2003년에 발표한 3집 앨범이다. 우선 재킷 사진이 사뭇 아름답다. 아마도 ‘말로’의 발이라 추측할 수 있는 맨발과 주위에 떨어져 있는 벚꽃 잎들이 이 앨범의 정서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다. 말로는 한국적인 재즈를 표방하고 있는 대표적인 보컬이다. 꾸준한 활동에 걸맞은 대중적 인기는 물론이고 음악성과 더불어 한국적인 정서를 그녀만큼 잘 버무려 내놓는 싱어도 없다. 특히 여성스러운 가사의 전달력, 섬세함은 가히 타의 주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이다. 그녀가 주목받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말로 부르는 그녀의 재즈야말로 진정한 한국적인 재즈라 일컬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녀가 구사하는 화려한 스캣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뿐더러 오죽하면 한국의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라고 부르겠는가.

‘말로’는 그녀의 예명이다. 처음엔 ‘정말로’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였으나 오늘 소개하는 3집 앨범부터 ‘말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작곡 ‘그루터기’로 19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에서 은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하는가 싶더니만 1995년 돌연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에 입학해 공부한 음악적 수재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녀가 1998년에 내놓은 1집과 곧이어 만든 2집의 대중적인 외면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음악 작업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을 법 하다.

3집 앨범 ‘벚꽃지다’는 순전히 한국적이다. 한국적이라는 뜻은 여태까지 한국의 많은 재즈 싱어들이 그래온 것처럼 일부 재즈 스탠더드를 영어 가사로 부르며 내놓은 음반과는 많이 다르다는 뜻이다. 특히 앨범에 수록된 전곡에 대하여 작곡, 편곡, 노래, 프로듀싱까지 도맡아 하면서 이끌어 낸 것은 바로 ‘한국적’인 색감을 담은 수채화 같은 감성들이다. 재즈라는 분야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드러낸다는 것은 자칫 재즈를 어설프게 흉내 낸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에 그녀의 감칠맛 나는 보컬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만큼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한국어로 재즈를 잘 불렀다는 칭찬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한국적인 재즈가 나아갈 새로운 길잡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번 트랙 ‘벚꽃지다’는 이 앨범의 타이틀이자 말로의 음악적인 감각과 보컬로서의 재능이 어떤 수준인가를 명징하게 들려주고 있다. 보사노바의 리듬과 더불어 특별히 인트로 부분의 가슴 떨리듯 애절하게 들리는 ‘전제덕’의 하모니카 연주가 없었더라면 말로 혼자만의 보컬만으로는 아마도 무척이나 힘겨운 연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전제덕의 하모니카는 이 앨범에서 말로가 얻어 낸 최고의 선물이다.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

한세상 지네 슬픔 날리네

눈부신 날들 가네

꽃그늘 아래 맑은 웃음들

모두 어디로 갔나

바람 손잡고 꽃잎 날리네

오지 못할 날들이 가네

바람길 따라 꽃잎 날리네

눈부신 슬픔들이 지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온통 주변에서 벚꽃이 피고 있는데도 자연스레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말로의 스캣은 바람에 날리는 벚꽃잎처럼 하늘에 흩날리는 듯하고 노래 가사는 마치 ‘말로’는 다 못할 사랑을 ‘노래’로 하고 있는 듯하다. 꽃잎이 날리는 밤에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면 감정에 취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밤을 새울지도 모르겠다. 날리는 꽃잎 같은 허무한 사랑 한번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가사에서처럼 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사무치듯 허무한 삶과 잃어버린 사랑과 시간만을 느끼는 건 아니다. 꽃이 아름다운 건 단 한 번도 허튼소리로 끝나지 않은 다시 필 것이라는 그 약속 때문이다. 그 꽃잎은 반드시 이듬해 봄에 다시 피어난다는 뜻이다. 이 노래는 봄밤에 특히 가슴으로 들을만하다. 노래를 들을 때 가슴속에서 꽃잎이 떨어지는가? 만약 그렇다면 아직 사랑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세 번만 반복해서 들으면 그 사랑이 더욱 짙게 될 것이다.


글: 리디언스(트위터 @readiens)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중년의 커피 로스터.

 

말로 3집과 함께하기 좋은 커피 추천: 눈부신 봄날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