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가 재즈를 만나면?


봄이 되면 주변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여러 음악들이 있다. 그중 클래식 장르의 음악으로는 대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와 더불어 오늘 소개할 ‘비발디’의 ‘사계’를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곡은 비단 봄뿐만 아니라 계절에 상관없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곡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식상한 음악으로 치부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가요의 인트로에 사용되는가 하면 휴대폰의 컬러링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본래 비발디의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서 사계절에 대하여 세밀하고도 풍부한 묘사로 유명한 음악이다. 더욱이 악보의 중간중간에 지은이 미상인 시(소네트)가 들어가 있어 표제 음악으로서의 기능에도 충실한 대표적인 곡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곡을 연주한 음반이야말로 셀 수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음반으로는 아무래도 이탈리아 실내악단인 ‘이 무치치'(I Musici)와 바이올리니스트 ‘펠릭스 아요'(Felix Ayo)의 협연으로 레이블 ‘필립스’에서 발매된 음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밖에 국내 연주인의 음반으로는 정경화의 연주도 들어볼 만 하다.

오늘 소개할 음반은 수많은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도 특히 재즈로 편곡되어 피아노 트리오의 단출한 구성으로 연주된 ‘Jacques Loussier Trio’의 ‘Vivaldi, The Four Seasons'(Telarc)이다. Jacques Loussier와 그의 트리오에 대해서는 이미 본 지 창간호(2013년 5월호)에서 Bach의 Goldberg Variation을 다루며 비교적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으므로 다소 중복된 감이 없지는 않으나 Jacques Loussier가 단순히 Bach 스페셜리스트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것은 물론이고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곡가인 라벨과 드뷔시의 곡들과 또한 에릭 사티,쇼팽 등을 연주한 앨범, 특히 Bach가 활약했던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헨델과 비발디의 앨범에서도 타 연주자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과 예술성을 과시했기에 이번 호 지면에서도 Jacques Loussier Trio를 다시 한번 소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특별히 Bach의 음악을 제외하고서는 본 호의 소개 앨범인 ‘Vivaldi. The Four Seasons’를 최고로 뽑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너무 흔하게 들은 탓에 자칫 식상하고 지루하게 느껴질만한 곡을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들을 수 있도록 완벽하게 재탄생시켰으니 말이다.

음반을 데크에 올려놓고 오디오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맨 처음 터져 나오는 Vincent Charbonnier의 베이스 소리와 Andre Arpino의 드러밍 소리에 눈과 귀가 스피커 쪽으로 쏠리게 된다. 이어서 들려오는 Jacques Loussier의 경쾌한 피아노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게 뻔하다. 정통 클래식 연주에서는 맨 먼저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봄바람을 연상시키는 가벼운 현들의 울림이 귀에 들어오겠지만 이 앨범에서는 마치 봄에 움 트는 생명들의 경쾌한 움직임이 터져 나오는 듯 하다. 전체 곡의 흐름 중에서도 특히 이 ‘봄’ 부분이 가장 인상 깊은데이는 아마도 첫 부분부터 Jacques Loussier의 창조적인 편곡과 연주 능력이 비발디의 사계라는 익숙함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할 때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제약이 뒤따를 수 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원곡의 분위기와 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재즈를 재즈답게 만드는 리듬, 즉 ‘swing’을 어떻게 구현하는지가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Jacques Loussier는 가히 비교할 수 없는 매력과 능력을 가진 연주자임에 틀림없다. 앨범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스윙감은 ‘Vivaldi, The Four Seasons’이 재즈 앨범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워 준다.

이 앨범은 특히 봄에서는 생명력이 가득 찬 1번 트랙 Allegro를, 여름에서는 강렬한 폭풍우 소리가 들리는 6번 트랙 Presto를, 가을에서는 늦가을 느낌 그 자체인 8번 트랙 Adagio Molto를, 겨울에서는 눈 덮인 쓸쓸함을 느끼게 해 주는 11번 트랙 Largo가 특히나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별히 각 계절에 붙어있는 짧은 시 즉, 소네트와 함께 즐긴다면 여태까지 이곳저곳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식상하게 들어온 비발디의 사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다. 곧 다가올 찬란한 봄뿐만 아니라 곧 이어질 각 계절이 바뀌는 순간순간마다 들을 수 있는 매력적인 앨범이기 때문이다.

벌써 3월이다. 3월이 되었으니 계절은 이미 봄이고 봄이 되었으니 이제 곧 꽃이 필 것이다. 꽃이 피면 그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고백쯤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아니면 거꾸로 그 꽃들 모두가 누군가 나를 위해 고백하는 달콤한 속삭임으로 여기던지… 그렇게 하는 것이 이번 봄을 이미 진작에 경험한 나른하고 따분한 봄으로 지내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보자. 아울러 커피 한 잔을 정성 들여 내릴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 같이 마셔 보자. 커피 원두는 가능하면 에티오피아의 예가체프(Yirgacheffe) 혹은 시다모(Sidamo)로 하는 게 좋겠다. 둘 다 꽃 향이 좋은 품종의 원두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말 그대로 금상첨화(錦上添花) 아닌가…

글: 리디언스(트위터 @readiens)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중년의 커피 로스터.

에티오피아 예가체프가 궁금하세요?